문학/단편 소설 17

짝사랑 [소설]

처음 그녀를 본 순간,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다.너무 갑작스러워서,오히려 두려웠다.내가 나를 알기도 전에마음이 앞질러 달려가 버렸다.'시작하자마자, 중간을 건너뛰어버린'그런 사랑이었다.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땐우리는 우연히 같은 색의 옷을 입고 만났다.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왠지 모르게 어색해했다.'너와 나는 섞일 수 없는 걸까?'다름이 아니라, 그저 색이 같았을 뿐이었다. 나는 나답게 사는 것보다네가 너답게 사는 것을 원했다. 우리 사이에는이름조차 붙이기 어려운애매한 공기가 흘렀다.그 이름은 ‘짝사랑’이다. - 그녀를 하루하루 만날수록우리는 둘도 없이 가까워졌다.어느 날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손을 잡아보았다.그녀도 웃어주며 손을 꽉 쥐어주었다.어느 날은,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

점묘 [소설]

가을의 끝자락, 하늘은 유난히 높았다.유나는 오래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햇살이 점처럼 바닥에 흩어지고, 바람은 국화꽃 향기를 실어 나르며 어딘가 아련한 기분을 남겼다.유나의 마음속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풀어지고,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 가득했던그 여름,그는 오랫동안 꿈꿔온 유학을 떠났다.- '여름아, 끝나지 말아 줘'두 사람은 여름 내내 함께였다.선선한 바람은 둘 사이를 감싸주었고 추억은 조용히 쌓여만 갔다.그는 나에게 얘기했다."계속 곁에 있고 싶어. 울어도 괜찮아?" 유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강한 척하지 않아도 돼. 끝이 있는 사랑이라 해도, 만나서 행복했으니까."그날 밤,두 사람은 함께 강가를 걸었다.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곧 다가올 이별의 그림자가..

휴가 [소설]

숨이 막힐 듯한 하루가 또 끝났다.지우는 사무실 불이 꺼진 뒤에도 한참을 책상에 앉아 있었다.모니터에는 끝내지 못한 업무가 남아 있었고,창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다들 잘 해내고 있는데,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지우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사람들은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고,SNS에는 웃는 얼굴과 화려한 풍경이 넘쳐난다.지우는 그 속에서 늘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조금은 달콤한 인생을 꿈꿨는데,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네.’어느 날,지우는 충동적으로 휴가를 냈다.‘이대로는 안 되겠어.나도 잠깐쯤은 도망치고 싶어.’가방 하나만 챙겨혼자 바닷가로 떠났다.바닷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하지만 그 바람 속에서지우는 오랜만에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모래사장을 걷다가파도에 발을 적시며..

사랑의 함정 [소설]

지유는 오늘도 휴대폰을 움켜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알림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혹시 그 사람일까?’하지만 화면에는 친구들의 단체 메시지, 광고, 그리고 아무 의미 없는 소식들뿐이었다.지유는 연애가 어렵다고 생각했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멈출 수 없고,점점 더 그 사람에게 빠져드는 자신을어쩌지 못했다.“너무 들이대면 안 돼,하지만 또 너무 무심해 보이면 안 돼.”머릿속은 ‘이렇게 하면 안 돼, 저렇게 하면 안 돼’끝없는 규칙으로 가득했다.주변 친구들은“그 사람, 별로야.넌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지유는 신경 쓰지 않았다.사랑에 빠진 마음은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작은 우주가 된다.‘나는 혹시 너무 집착하는 걸까?아니면 그냥 사랑에 솔직한 걸까?’지유는 스스로에게 ..

푸른 봄 靑春 (소설)

“요즘 어떻게 지내?”소연은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그럴 때마다 그녀는 늘 망설인다.“별일 없어, 그냥 그래.”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할 순 없지’라는 속삭임이 들려온다.소연의 일상은 평범했다.회사와 집, 그리고 가끔 듣는 음악.봄이 오면 창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나뭇잎이조금은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그러나 늘 어딘가 모자란 듯,감정은 조용히 숨겨두고‘괜찮은 척’ 살아간다.어느 날,소연은 퇴근길에 작은 공원을 지나게 된다.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이누가 돌보지 않아도씩씩하게 빛나고 있었다.‘나도 저렇게,누구의 시선이 아니라나를 위해 살아볼 수 있을까?’소연은 조심스럽게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아름답고 싶지만,때로는 헤매고 고민하는 날도 많다.그런 날의 자신도누..

숨 [소설]

도시는 언제나처럼 차갑고 바빴다.수현은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창밖으로 스치는 불빛, 익숙하지 않은 풍경,어디선가 풍겨오는 낯선 냄새에그는 자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나는 참 얄팍한 인간이야.’수현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회사에서, 집에서, 친구들 사이에서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눈에 띄지 않으려 조심하며조용히 숨을 죽였다.매일 반복되는 하루.어제와 똑같은 저녁밥,어제와 똑같은 한숨.‘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수현은 늘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위험을 확인해주길 기다렸다.자신은 그저 뒤따라가며조용히 살아가는 게 편했다.그러나 그 편안함은점점 숨이 막히는 답답함으로 변해갔다.한숨만 내쉬다 보니들이마실 숨이 부족해졌다.‘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수현은 ..

언데드 [소설]

도시는 밤마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회색빛 아파트, 복사된 듯한 표정의 사람들, 그리고 그 틈에 섞여 있는 나. 나는 스스로를 ‘언데드’라 불렀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으니까. 매일 아침, 거울 속의 나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도,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모두 같은 맛, 같은 색, 같은 온도. 아무리 마셔도, 아무리 걸어도 내 안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건 계속 변해가는 거야.” 어릴 적 엄마가 해준 말이 불쑥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과거의 나, 실수투성이였던 나, 상처받던 나, 그 모든 ‘나’가 투명한 망령처럼 내 곁을 맴돌았다. 어느 날 밤,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나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지?..

쥐 나라 [소설]

그날은 아마 입사한 지 3일 정도 되던 날일 거예요.제 부서 사람들은 상냥하게 알려 주고 항상 눈웃음을 지으며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그런 분들이셨죠.큰 규모의 기업, 좋은 부서 사람들지금까지의 지옥 같던 취준생활에 한 줄기 희망이 드리웠다 생각했어요. 그러던 와중 쉬는 시간 회사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부서 과장님이 느닷없이 저에게 질문을 하셨어요."창현 씨는 정치 성향이 어떻게 되는가?""네?""아니 우리 부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려나 싶어서 그냥 허허." 그렇게 물어보는 과장님의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지 않았어요. 저는 당황스러웠어요.정치 성향은 가족끼리도 밝히는 거 아니라고,설령 가족이나 친구라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라고,왜냐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정치 얘기를 하게 되면같은 계열..

편의점 명탐정 [소설]

[방가방가!]이 괴상한 소리는 우리 편의점 입장벨 소리다.우리 점장님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배불뚝이 아저씨로 굉장히...... 스위트하다.손님이 별로 없는 외곽지역 편의점이다 보니귀찮게 구는 사람도 딱히 없고...어느새 내가 이 편의점에 온 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방가방가!]줄곧 멍 때리다 보니 벌써 점장님 교대시간이다."안녕하세요 점장님!""어 그래 소현아 별일 없었지?""물론이죠!""그래~ 오늘도 고생해쓰!"점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살포시 올리며 말했다."히히 네! 고생하세요!"다음날 아침[방가방가!]"안녕하세요!""어 그래 소현, 왔니..."점장님은 카운터에 앉아 무언가 고심하고 있었다."무슨 일 있었나요?"점장님은 조용히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선물인가요?""아니 이 녀석아 ..

공포 [소설]

---불과 이틀 전, 나는 굳게 결심하였다.흘러가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인생을 직접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한 달 전인 2월 17일엔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달력을 찾아보니 월요일이다. 전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아마 출근해서 밥을 먹고, 퇴근해서 밥을 먹고, 잠을 잤을 것이다.난 이런 기억이란 퍼즐들이 모여 완성되는 그림이 되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었냐고 물어봤을 때 읽었다고 할 정도로 다독가가 되겠노라.누군가 이 영화를 보았냐고 물어봤을 때 보았다고 할 정도로 매니아가 되겠노라.틈틈이 운동을 하여 몸을 키우고, 뉴스 기사를 한 줄 더 읽어서 지식인이 되겠노라.나는 허공에 소리친다, '할수있다!' 맞은편 벽에서 내 목소리가 틩겨나온다.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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