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편 소설

쥐 나라 [소설]

약한소리뱉기 2025. 4. 14. 10:37

 

 
 


그날은 아마 입사한 지 3일 정도 되던 날일 거예요.
제 부서 사람들은 상냥하게 알려 주고 항상 눈웃음을 지으며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그런 분들이셨죠.
큰 규모의 기업, 좋은 부서 사람들
지금까지의 지옥 같던 취준생활에 한 줄기 희망이 드리웠다 생각했어요.
 
그러던 와중 쉬는 시간 회사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부서 과장님이 느닷없이 저에게 질문을 하셨어요.
"창현 씨는 정치 성향이 어떻게 되는가?"
"네?"
"아니 우리 부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려나 싶어서 그냥 허허."
 
그렇게 물어보는 과장님의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지 않았어요.
 
저는 당황스러웠어요.
정치 성향은 가족끼리도 밝히는 거 아니라고,
설령 가족이나 친구라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라고,
왜냐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정치 얘기를 하게 되면
같은 계열이라면 다행히 돈독해지고 가까워지겠지만
반대 계열이라면 아무리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로 지지한다 한들
상대방을 벌레로 보듯이 증오하고 혐오하고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배워 왔어요.
한창 고등 수업을 배울 때 부모님에게 왜 특정 정당을 지지하냐 물어봤더니 그냥 '핏줄'이 그렇대요.
저는 그 전까지 세금 절세라든지, 국방비 증감이라든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줄 알고 있었었어요.
물론 우리 부모님만 그랬을까 싶다가도 성인이 된 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들 또한 비슷한 이유로 지지하고 있었어요.
"내가 그분이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 볼래?"
"난 그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앞이 촉촉해져."
"난 지금 TV만 보면 울화통이 나! 얼른 뒤졌으면 좋겠어!"
그렇게 '핏줄'과도 같은 논리를 들으면서 자란 저는 교육이 필요했어요.
 
한쪽으로 편향된 공중파 방송은 보지 않고
중립적인 공중파 방송의 뉴스만을 찾아보고,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며
어느 정부가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지를요.
 
하지만 한 가지씩 알게 되면서 저는 책을 덮게 되었어요.
이 세상은 논리와 상식이 끝난 세상이란 것을요.
 
제가 이렇게 논리와 상식으로의 한 표와
그들의 '핏줄'로 인한 한 표가 같다니요.
 
그리고 저는 또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어요.
투표율이 높아서, 과반수라서, 어느 정부가 수립된다면
그 정부는 틀렸든 올바르든 국민들이 뽑은 '올바른' 정부인 거니까요.
 
예시를 하나 들어 보고 싶어요.
쥐들이 사는 나라에서 민주 투표를 진행했어요.
하지만 과반수의 투표로 '고양이에게 쥐구멍 위치를 알려 주고 항복하자'라는 찍찍당이 뽑혔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반대파인 '고양이를 위협할 무기를 만들자'라는 낑낑당은
나라를 위협에 빠트리려 한 죄로 구속이 될 거예요.
 
만약 10년 후 쥐들이 고양이에게 다 물려 죽게 된다면
이 나라의 통치가 잘못된 걸까요?
아니요, 통치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시민 쥐들의 이념이 원하는 대로였으니 오히려 잘된 통치겠지요.
물론 찍찍당을 지지한 시민 쥐들 중 일부는 자기들이 가진 이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조차 모른 채 죽었겠지만
상관없어요. 그 또한 그들의 선택인걸요.
 
그렇게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 직장 상사가 저에게 정치 성향을 물어본 것에 대해서
짧은 찰나, 생각을 해내야 해요.
'이 과장님은 무슨 대답을 원하는가'
대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어요.
그 대답이 맞다면 저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부서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이건 편향된 생각이 아니에요.
그 감각은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살갗 위에서 느껴지고 있어요.
반대로, 그 대답이 틀렸다면 저는 앞으로의 직장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또다시 취업 지옥에 빠져야겠죠.
 
...
 
창현은 옥상 난간에 기댄 채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곧 봄이 올 거예요."

과장님은 2초 정도 가만히 멈췄다가 이내 입꼬리가 마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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