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밤마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회색빛 아파트, 복사된 듯한 표정의 사람들,
그리고 그 틈에 섞여 있는 나.
나는 스스로를 ‘언데드’라 불렀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으니까.
매일 아침, 거울 속의 나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도,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모두 같은 맛, 같은 색, 같은 온도.
아무리 마셔도, 아무리 걸어도
내 안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건 계속 변해가는 거야.”
어릴 적 엄마가 해준 말이
불쑥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과거의 나, 실수투성이였던 나,
상처받던 나,
그 모든 ‘나’가
투명한 망령처럼 내 곁을 맴돌았다.
어느 날 밤,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나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지?”
불행에 익숙해진 나는
행복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오늘, 힘들었죠?”
낯선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쳐 있고,
희망도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를 버티는 얼굴.
“넌 누구야?”
“너야.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과거에 묶인 너.”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매일 싸우고 있던 건,
세상도, 타인도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날의 나,
실패한 나,
두려워하는 나였다.
“죽지 않았어.
아직 살아 있어.”
그가 말했다.
“행복을 포기하지 마.
불행에만 익숙해지지 말고,
오늘만큼은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봐.”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도시는 여전히 회색이었지만,
내 안에 작은 빛이 켜진 것 같았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수도 있다는
조그만 기대.
과거도 미래도
결국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에 있다는 사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집을 향해 걸었다.
투명한 망령은
조금씩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조금은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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