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편 소설

캣 [소설]

약한소리뱉기 2025. 3. 15. 22:08

 

 

 




1. 탄생


나는 태어났다. 눈부신 불빛아래
나는 형제와 엄마를 회색 하늘 아래 처음 만났다.
우리와는 다르게 생긴 거대한 생명체도 곁에 있었다.
'그'는 우리 형제들과 엄마에게 우유와 먹을 것을 챙겨 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린 손가락을 보여주었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씩 열리고 닫히던 큰 나무에서
'그'와 비슷하게 생긴 생명체가 들어왔다.
'그'는 그것에게 현서라고 부르는 듯했다.

 






2. 만남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울부짖더니
현서라고 불리는 녀석이
나에게 곧장 다가와 번쩍 들어 올렸다.
그 녀석의 손은 '그'의 손과는 달리
크고 널찍하고 복슬복슬한 분홍색 손이었다.
현서는 나에게 몇 차례 말을 걸더니
애정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이 녀석의 눈, 왠지 낯설지 않다.
이후 현서는 나를 데리고 일어나
큰 나무로 다가가다 이내 등을 돌려
나를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는 곳에 데려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꾹꾹 누른다.
뭐 하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어서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다시 현서의 품에 안겨 큰 나무 안으로 들어간다.
뒤에서 엄마가 어디 가냐는 의미로 소리를 질렀지만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나무는'쿵 하고 닫혔다.



 

 

 


3 하늘

 

 


현서의 품 안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좋은 냄새가 났다.
이동을 할수록 주변 풍경들은 색색이 달라지고.
정신없는 세상을 구경하느라 너무 혼란스러웠다.
현서는 아까부터 나한테 하는 얘기인지
혼자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후추? 호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줄곧 되풀이하고 있다.
이 녀석의 옹알이에 신경을 끄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지금까지 봐온 회색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내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이 있다
저 하늘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1-1 탄생


오늘은 멀리 떠난 아빠의 첫 번째 기일이다.
사진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음을 보였다.
"어휴 언제 돌아올래 올 때 되지 않았어?
음... 어라 이제 슬 전화 올 때가..."
'따르릉!'
슬기에게 전화가 왔다.
늘 아침마다 전화를 걸어주는 좋은 친구이다.
"왜 또 귀찮게 전화를 했대?"
"어제 우리 코코가 새끼들 낳았다고 했잖아"
"응 사진도 보여줬었잖아 왜?"
"아니 글쎄 어젯밤에 새끼들 다 낳은 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에 눈 뜨고 보니깐 새끼 한 마리가 뒤늦게 이제야 태어났어!"
"에? 그럴 수가 있어?? 되게 신기하네??"
"진짜 아침에 나 정말 놀랬잖아, 어때 한 마리 데려가서 키울의향있어?"
"에이.. 나 고양이 알레르기 조금 있긴 해서 키우기는 좀 그럴거같은데? 그냥 오늘 한번 너네 집에 놀러갈게"



 

 

 



2-1 만남

 

 


"어서 와!"
집 현관을 열어준 친구는 어딘가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글쎄 아침에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내 손가락을 깨물었어..."
"에이 새끼가 물어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엄살이냐? 눈도 못 뜨고 있는 애 아니야? 어이구"
"어허 자식이 부모한테 대들면 쓰나!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교육 좀 시켰지! 근데 현서야 고양이 괜찮겠어?"
나는 친구에게 끼고 있던 털장갑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가운 코코와 작은 코코 여섯 마리가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미친, 너무 귀엽네 진짜"

 

 

 


현서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위엄 있게 말을 걸었다.
"누구냐, 누가 내 친구 손가락 깨물었어. 얼른 자수하라."
친구는 조그마한 새끼 한 마리를 들며 말했다.
"흑흑 정말 죄송합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현서는 친구에게 새끼 고양이를 받으며 마주 보았다.
"아니! 정말 잘했다! 상으로 츄르를 선사해 주마"
현서는 새끼 고양이의 눈을 계속 쳐다보다가
뭔가 모를 애틋함이 느껴졌다.
"슬기야, 나 얘 한번 그냥 키워 볼까?'
"엥? 괜찮겠어? 뭐 알레르기 있는 사람치고 증상이 심하진 않으니깐.. 마음대로 해"
현서는 새끼 고양이를 번쩍 들고일어났다.
"응! 고마워 내가 이 녀석 하나만큼은 잘 키워보겠노라."
방 문 앞에 선 현서는 뭔가 깨달았는지 코코에게 다가갔다.
"데려가서 미안해, 내가 잘 키워 볼게! "
새끼 고양이를 코코에게 인사시킨 후 방문을 열고 떠났다.






3-1 하늘


화창한 하늘
마치 나와 고양이의 만남을 축복하듯
밝은 햇빛이 우리 둘을 내리쬔다.
고양이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본다.
"신기하지 어때, 바깥공기 좋지?
음 츄르라고 먹어볼래? 음 아직은 무리겠지?
미안 고양이 처음 키워보네 히이
아! 너 이름 지어줘야지 참
뭐가 좋아? 후추? 호두? 너무 진부한가...
너 엄마가 코코니까 코씨 해야겠지?
코... 어휴 어렵다 미안해,
그나저나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음.... 어라?
오늘 하늘이 되게 예쁜 날이니깐,
'하늘이'어때? 마음에 들지?
뭐? 너무 대충 짓는 거 아니냐고?
음... 뭐 어쩔 수 없어 그러려니 해
넌 이제부터 내 가족이니깐"

 

 

 

 

4. 동거

 

 


현서와 나는 그 이후로
3년 정도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사람의 말과 행동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서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항상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런 현서가 굉장히 귀찮긴 하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다.
어쩔 땐 '가족'이란 느낌도 생길 때가 있다.
음.. 슬슬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말이 없지?
나는 현서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현서는 나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함께 장식장 앞에 서서.
'아빠' 사진에 기도를 한다.
매일 밤마다 치르는 의식이다.
사진 속 그는 굉장히 잘생겼고
왜 인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4-1 동거


나와 하늘이는 그 이후로
3년 정도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고양이의 말과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한 건 이 녀석은 물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고양이가 물을 싫어한다는 것은 얼추 들었지만
하늘이는 정도가 심하다.
전생에 원수라도 졌나 보다.

...

최근에 슬픈 일이 생겼다.
요즘 목에서 계속 피가 나오고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을 들렀다가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들었다.
오래 입원을 해야한다는 소식이다.
의사 선생님에게 죽을병이냐 물어보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하였다.
선생님은 고양이 알레르기 증상이 겉으로는 미약하지만
몸 안쪽에서 발현되고있었을 확률이 높다며
우선, 고양이와 접촉하지 말라고 통보하였다.
 




5 병원


현서는 하루종일 울상인 채로
나를 어느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 곳엔 현서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과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와 닮은 것 같지만
나를 경계하고 있다. 
나 또한 그들을 경계한다.
그냥 어서 빨리 현서를 만나고 싶었다.
그로부터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문이 올리더니 현서가 찾아왔다.
"역시 난 너 없으면 안 돼 "
현서는 가방 안에 날 집어넣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편안해졌다.
 
 




5-1 병원

무작정 하늘이를 병원에 몰래 데려왔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나는 혼자 있기 싫다.
두렵고, 무섭고, 외롭다.
또. 내 하나뿐인 가족을
병균 취급하기 싫었다.
하늘이는 내 마음을 알까
"야 자니?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깐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내 곁에 꼭 불어있어,
알겠지? 또 갑자기 사라지면 안 된다 했다! "
하늘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을 돌린 채로 자고 있다.
 
 
 

 

 

 




6. 가출

 


깊은 밤. 현서는 곤히 잠들어 있다.
내가 인간의 말을 다 알아 듣는 것은 아니지만
몸소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내 존재는 현서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최근 현서의 몸이 안 좋아진 것과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하는 몸짓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도 같은 사랑을 현서는 나에게 주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피해를 주기 싫다.
계속 내가 곁에 있다면 현서는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현서는 내 가족이기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창문의 열린 틈새가 평소보다 더 벌어져 있다.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지 마"
놀라서 뒤를 쳐다보자 현서는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

 


병원을 빠져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쭉 굶주렸기에 눈에 뵈는 게 없다.
하루는 맛있는 냄새가 나서 어딘가 따라 들어갔더니
인간에게 걷어차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해가 질 때면
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밤새 쫓겨 다니는 신세를 매일 지고 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까,
내가 인간이라면 어땠을까. 현서와 함께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사실 난 인간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지금 하수도 안에서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숨쉬는데만 집중 중이다.
밖에는 굉장한 소음과 함께 힘찬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내가 있는 곳도 곧 있으면 저 빗물에 가득 찰지 모르겠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물줄기를 한 동안 쳐다보고 있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먹지 못해 가죽 밖에 남지 않았고
언제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왼쪽 뒷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조용히 눈을 감고만 있어야겠다.


'쏴아아아아아아'


폭포같은 빗소리에 잠시 눈이 뜨였다.
잠시 잠에 들었었나?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 눈을 감는다.
문득 빗소리와 함께 다른 차원 너머에서 선명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꿈인가...? 무엇일까...?



 
...
 

 

 

 

 

7. 기억


계곡에서 현서와 둘이 놀고 있던 나는
갑자기 내린 빗방울에 급하게 철수했다.
'빗방울이 많이 아픈데...'
얼른 자리를 피하기 위해 돗자리를 정리하던 중
현서가 느지막이 얘기한다.
"어! 내 신발 떠내려 간다!"
신발은 방금 물에 빠졌다.
조금만 걸어가면 금방 손에 잡힐 만한 거리다.
"에이 이 정도는 가져오지, 넌 저기 가서 짐 정리 좀 하고 있어"
"에? 아빠 그냥 신발 버려 위험하잖아 신발 그거 얼마 정도 한다고 참"
현서는 아직 어리며,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은 편이라서 그렇다.
계곡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현서가 소리친다.
"가지 마!"
순간 마음이 동요할 뻔하였으나
신발이 더 멀리 떠내려 가기 전에
어서 서둘렀다.
"금방 돌아올게!"



신발을 얼른 잡고
돌아가려는 찰나
순간 바닥에 있는 바위에 미끄러졌고
다른 발로 다시 설 곳을 다급히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밟히지 않았다.
개 수영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물을 몇 차례 삼켜 판단 자체가 둔해지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거센 물살이었다.







...



갑자기 떠오른 기억들에
곧 있으면 영원히 닫힐 것만 같던 두 눈이 번뜩 떠졌다.
'내가 잠시 졸았나? 또 꿈을 꿨던 것일까?'
'이 기억들은 뭘까 내가 현서 아빠라도 된다는 것인가?'
'나는 누구지? 고양이로 환생한 현서 아빠인가?'
'아니면 현서아빠의 기억이 그저 고양이인 나에게 깃든 것일까? 단지 현서가 날 키웠다는 것만으로?'
'그렇가면 그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이런 기억을 심어줄 것일까?'



처음 현서를 만났을 때
느꼈던 낯익은 감정과 편안했던 분위기
그것들이 우연이 아니었다면?
현서아빠의 사진을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이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면?
말도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만약 현서가 간절하게 기다린 아빠라면
왜 고양이로 태어나 현서를 아프게 만든 것일까
혼자 가기 싫어서 현서를 길동무 삼으려 내려온 저승사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작은 두뇌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애초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이라도 찾아가봤자 오히려 현서에게 해만 끼칠 뿐이다.

정말 내 존재가 현서를 하늘로 데려 오라는 '저승사자 '가 아니라면 말이다.

 

 


...



가만히 앉아 현서를 한번 떠올려보았다.
그녀는 내게 과분한 사랑을 주었다.
너무나도 많은...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수도를 빠져나가 빗 속을 뚫으며
병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단지 그냥 그런 고양이든
현서 아빠의 환생이든
현서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든
아무 의미도 없다.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현서는 그날 아빠를 잃고 매일매일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떠나고 1년이 되던 날.
나는 태어났다.
현서는 그날, 나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을 테다.
무엇이라고 느꼈을까? 아빠라고 생각하였을까?

현서는 아빠에게
차마 다 받지 못한 사랑을
나에게 베풂으로써 사랑을 다른 형태로 충족시키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지 사실 상관없다.
현서가 '나'를 뭐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아빠로 투영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런 내가 스스로 현서 곁을 떠났다.

 

 


지친 몸과 덜렁대는 뒷다리를 이끌고
병원 창가에 도착하였다.
현서는 침대에서 새하얀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후 흰색 옷을 입은 사람과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8. 고양이


'이현서'라고 적혀있는 병실로 뛰어갔다.
환자가 위독해졌다.
이 환자는 입원 당시까지만 해도 병이 심각한 환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입원 후 갑자기 이유 없이 병세가 심해져 주의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이 환자는 어리지만 연고자가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암울한 표정으로 환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송 간호사 저기 고양이 좀 쫓아내 주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창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비를 피하러 여기까지 올라왔나?'
고양이를 쫓아내기 위해 창문을 살짝 열자마자
고양이가 순간적으로 환자에게 뛰어올랐다.
"어머 얘야!"
고양이에게 손을 대려 하자 발톱에 할퀴어질 것만 같았다.
조금 뒤로 물러나 환자를 바라보니
그녀의 얼굴엔 활기가 돌았다.




...

 

 

 


현서는 고양이를 껴안았다.
그 순간 심장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쳐져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현서는 게슴츠레 한쪽 눈을 뜨고 웃으며 그에게 속삭였다.


"왜 이제야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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