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공간
깊은 어둠속에 각기 다른 숨소리만 들린다.
이내 조명이 켜지더니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짱구는 밝은 빛에 눈이 자연스레 떠져 의식을 되찾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은 교실 수준의 크기에 창문은 없었고 스피커가 달린 철문이 닫혀있었다.
바닥엔 철수,훈이,맹구,유리가 잠에든 채로 쓰러져있어 곧바로 깨웠고
모두 비몽사몽한 상태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이곳이 어디인지 언제 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상태였고
짱구와 친구들은 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굳건히 잠겨있었고 억지로 열어보려 해도 철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출구를 찾아보지만 전혀 나갈 수 있는 공간은 없다고 느끼자
처음부터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훈이가 질질 짜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건 훈이뿐이지만 모두들 비참한 표정으로 단념했다.
유리는 단념한 채 바닥을 쳐다보며 술냄새가 난다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방안의 조명이 꺼지고 어디선가 마이크를 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마피아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미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원수는 총 다섯 명으로 마피아 한 명 나머지 네 명은 자동으로 시민팀이 되겠습니다.
게임은 첫날밤부터 시작이며 밤에는 마피아가 사격을 하여 사람 한 명을 처형시킬 수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모든 인원들은 토론을 할 수 있으며 투표를 통해 사람 한 명을 처형시킬 수 있습니다.
마피아가 마지막에 살아남으면 마피아 승리
시민팀이 마피아를 투표로 처형시키면 시민 승리입니다
또한 승리 상금은 5억입니다. 시민팀 승리일 경우 각각 5억이 지급입니다"
철수는 긴장된 탓에 말 중간중간 못 알아들은 건 몇 번 있었으나
한 때 마피아게임을 자주 했었다 보니 단번에 룰 이해를 하였고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추가로 기존 마피아게임과 다른 룰이 있습니다.
투표는 익명투표가 아닌 손가락으로 상대를 직접 지목하면 되겠습니다.
또한 밤에 마피아가 사격을 가할 시 마피아를 포함한 총 인원중 한 명이 랜덤 하게 처형됩니다.
마피아가 처형된다면 즉시 게임은 종료됩니다."
"싫어요! 내보내주세요!"
어둠 속에서 짱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미지의 목소리는 듣고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녹음된 것인지 대꾸 없이 말을 이어갔다
"게임이 시작되면 마피아가 배정됩니다.
마피아는 사격을 원할 시 따봉 손가락을 올려주시면 랜덤으로 사격이 처리됩니다.
당연히 밤에 대화를 하거나 의사소통을 하려는 모습이 보인 다면 즉각 처형입니다.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보통 어둠 속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어 미세하게나마 시야가 확보된다지만
지금은 몇 분이 흘러도 암흑 그 자체이다.
이 공간 속에서는 흥분된 심장 박동소리와 친구들의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힙'
순간적으로 입밖에 소리가 터져 나올뻔한걸 간신히 참아냈다.
'누군가 내 등을 세 번 두드리고 사라졌다.
내가 잘못 느낀 것일까?
짱구가 그새 장난을 치고 간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짱구라도 이런 장난 따위는 치지 않을 것이고 설사 움직인다면 즉각 처형되지 않았을까?'
철수는 몇 분뒤 자신이 마피아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였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첫날이니 무사히 넘어가는 게 좋겠지?
하지만 내가 둘째 날부터 친구들을 죽일 수 있을까?
내가 사격요청을 한다면 정말 실제로 친구들이 죽을까?
죽더라도 내가 아닌 겁쟁이쫄보인 훈이나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모르는 짱구가 죽는 게 이 세상에 더 이득이 아닐까...?'
"10분 뒤 날이 밝습니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D-2
시간이 흐르고 조명이 밝아졌다.
다섯 명 모두 어둠에 적응된 눈을 게슴츠레 뜨며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두 다친 곳하나 없어 보였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다.
맹구와 짱구는 출구를 찾으러 방안을 돌아봤지만 의미 없었고
훈이와 유리는 겁에 질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저희는 상금을 위해 친구들을 죽일 수 없어요! 그만두세요!"
철수가 갑자기 확성기를 향해 크게 외쳤다.
그 말을 미지의 목소리에게 건넨 건지 다른 친구들에게 건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분이 흘렀는지
확성기에선 10분 뒤 투표를 진행하겠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철수는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무런 증거도 없기에 첫날은 본인투표하자는 의견을 내었고
모두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맹구 또한 골똘히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동의한 후 투표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부결되었습니다"
한마디와 함께 방 안의 조명은 빛을 잃었다.
'훈이와 유리는 내가 직접 의견을 말하면 수용하며 따를 거야
문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짱구와 생각이 많은 맹구 두 명이군
내가 누구를 지목할 수 있다면 편할 텐데 랜덤사격이라니.. 이래서야 마음 놓고 사격할 수 없잖아....
더군다나 나까지 죽을 수 있다고? 말이 돼? 마피아가 이길 수 있는 구조 맞아?'
철수는 밤이 된 후 머리를 쥐어짜며 고뇌하고 있었다.
'지금 사격을 했을 때 내가 죽을 확률은 20%
4명이 남았을 땐 25%
3명이 남았을땐 33%...
머릿수가 줄어들수록 내가 오히려 죽을 리스크가 더 커지니깐
미리 사격으로 인원을 줄이고 남은 인원들을 상대로 어떻게 선동하면 내가 조금은 유리해지지 않을까?'
"탕"
철수가 깊은 어둠 속에서 따봉을 날리자
순식간에 총성이 울렸다
철수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였는지 순식간에 깨닫게 되었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불안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D-3
"날이 밝았습니다"
갑자기 환해진 조명 탓에 모두들 실눈을 뜨고 있었다.
곧이어 훈이의 비명소리와 함께 모두 눈을 크게 뜨었고
유리가 앉아있던 자리엔 유리는 없고 핏자국만이 남아있었다.
훈이는 이 상황에 겁에 질려 대성통곡을 하였고
옆에 있던 짱구와 맹구도 몸을 떨며 공포에 질려있었다.
철수 또한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서 다행이긴 한데 왜 하필 유리일까'
짱구와 맹구를 설득시킬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때 철수는 떠올렸다.
모두 대화도 하지 못한 채로 벌벌 떨며 시간이 지났고
확성기에서는 10분 뒤 투표가 시작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훈이야 네가 마피아지?"
짱구와 맹구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울음을 그새 그친 훈이는 충격을 받은 듯이 철수를 쳐다봤다.
"뭐라고?'
"기억날진 모르겠는데 예전에 우리가 떡잎마을 방범대는 평생 함께라고 했던 거 혹시 기억나?"
훈이는 자신이 마피아로 몰려진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자신은 절대 마피아가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속이고 과자 몇 봉지에 현상수배 중이던 짱구를 팔아넘겼지"
훈이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그땐 정말 어렸고 짱구에게 사과를 받아냈다고 하였다.
짱구는 잡혀가던 그 당시를 회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투표가 시작됩니다"
맹구 역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생각을 마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제 짱구와 맹구 나 3명이서 논리적으로 따지면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철수는 승기를 잡은 듯이 양양해졌지만 표정관리에 힘을 썼다.
"미안해 훈이야... 하지만 유리가 죽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철수는 손가락으로 훈이를 가리켰고
훈이 또한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군 훈이 나를 지목해?'
라는 생각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니
맹구와 짱구의 손가락이 철수를 향해있었다.
"마피아가 처형되었습니다. 게임이 종료됩니다."
조명이 꺼지고 어디선가 가스가 흘러나왔다
'어째서...?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거지...?'
내가 너무 급하게 행동했나..?'
철수는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어디선가 마법소녀 마리가 나타나 웃어주었고 평생 깰 수 없는 긴 꿈을 꾸게 되었다.
...
D-1
짱구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맹구는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인위적으로 누군가 가둬두기 위해 만들어낸 공간 같았다.
짱구, 훈이, 유리와 함께 끌려오게 된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철수도 같이 끌려오게 된 것을 알게 되자 내심 놀랐다.
이후 확성기에선 마피아게임에 대한 룰이 나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맹구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생각하였고
마피아가 누굴까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D-2
조명이 밝아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했다.
탈출을 위해 방안을 뒤져보았지만 쉽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저희는 상금을 위해 친구들을 죽일 수 없어요! 그만두세요!"
철수의 큰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철수는 본인 투표를 주장하는 등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고
우정은 차치하더라도 살고 싶어서, 게임을 이기고 싶어서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부결되었습니다"
한마디와 함께 방 안의 조명은 빛을 잃었다.
조명이 꺼지자 맹구는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우정을 배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기 때문에 걱정되었다.
"탕"
D-3
환한 조명에 눈을 뜨자 유리는 사라져 있고 핏자국만이 남아있었다.
훈이는 대성통곡하고 있었고 맹구 또한 마음이 쓰라렸다.
유리가 처형당하고 게임이 종료되지 않았으니 마피아는 아직 살아있다.
"훈이야 네가 마피아지?"
훈이는 눈물을 흘리며 철수에게 흥분하며 대꾸하였고
그 상황을 지켜보다 짱구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짱구는 지금껏 수십 수백 번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달린 용감한 친구이다.
그런 친구가 마피아라면 아마 첫날부터 자백을 했을 것이다.
나는 짱구를 믿는다.
짱구에게 고개를 끄덕거린 후 손가락으로 술냄새에 절어있는 철수를 가리켰다.
...
D-4
전화벨소리가 울려 눈이 떠졌다.
이곳은 익숙한 방 천장이었다.
아직 약에 깨지 않은 듯이 머리를 감싸며 거실로 걸어 나갔다.
"그동안 어디 계셨나요? 연락도 되지 않아 통 걱정이었습니다"
"그래 김비서, cctv로 내가 사라지기 전과 오늘 내가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확인해 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비상금 계좌로 5억이 입금되었습니다.
입금자가 누군지는 찾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추적 잘하고 내 친구 유리에게 다른 계좌로 10억 정도 보내주게"
성인이 된 후 이십여 년간 몰두했던 연구가 성공하여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돈과 명예 모두 얻게 된 맹구는
고층빌딩에서 도쿄의 전경을 바라다보며 사색에 잠겼다.
유리의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리는 혼자 남겨진 상태로 아이를 낳은 지도 3개월 채 안된 상태였기에
우울증이 크게 왔었고
맹구는 그녀를 안타까워함과 동시에 혹여나 우정을 배반할까 걱정도 되던 참이었다.
하지만 유리가 죽고 나서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
그동안 십 년 동안 연락두절되었던 철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핏 봐도 알코올 중독자에 노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철수를 자연스럽게 의심할 뻔했지만 마피아 배정은 랜덤이었고
게임적으로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색안경은 끼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고 게임 내적의 행동만을 집중적으로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유리가 죽은 직후 자연스럽게 제일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버렸다.
이후 투표시간에 다다르자 철수가 훈이를 지목하며 말했다.
옛 과거에 짱구를 팔아넘긴 일을 언급하며 마피아로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과거가 있는 건 모두 알고 있었고 수긍할만한 의견이었다.
하지만 훈이 같은 겁쟁이 쫄보가 마피아라면 절대 20%의 확률로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을 것이다.
물론 10%의 확률이라 해도 훈이 같은 성격이라면 목숨을 걸지 않고
사격 또한 자백 또한 하지 않고 하루종일 입만 다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은 인원인 짱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말 없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